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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원의 생각과 활동

(탈모예방)탈모를 예방하고 소중한 머리카락을 지키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찾아서. 1탄! <이상근 얼레빗 장인을 만나다>

(탈모예방)탈모를 예방하고 소중한 머리카락을 지키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찾아서. 1탄! <이상근 얼레빗 장인을 만나다>


탈모를 예방하고 소중한 머리카락을 지키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찾아서. 2탄! <이상근 얼레빗 장인을 만나다>

 

12월 9일 빗을 만나는 두 장인(무형문화재)를 만났습니다.

우선 충청남도에 계시는 이상근 얼레빗장인을 찾아뵈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본 모습보다는 좀더 엄숙하고 연륜이 더 묻어나보였는데 그 모습에서 더욱 장인의 모습을 뵐수 있었습니다.

인사를 드리자마자 제 홈페이에서 제 얼굴을 미리 익혔다며 바로 알아볼 수 있겠다고 하시네요. 반갑게 맞이해주시고는 작업장으로 저를 안내해주셨습니다.

 

 

 

작업장엔 한창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는지 여기저기 연장이며 빗들이 흩어져있었습니다.

이상근 장인은 지금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빗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빗을 고정시키는 고정대도 빗살 간격을 일정하게 만들어주는 톱도, 빗살 끝을 예리하게 만들어주는 끌도 모두 손수전통방식으로 손수 만들어서 사용하신다고 합니다.

 

 

  빗살의 끝을 예리하게 다듬어주는 끌인데요, 사진의 왼쪽이 처음만들 때 모습이고 빗을 만들면서 점차 닳아 없어지다보면 가운데 보이는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고 합니다. 그걸 더 쓰다보면 이상근 장인의 표현대로 라면 “쥐꼬리”라고 할 수 있는 정도(사진 맨 오른쪽)로 작아지게 된다고 봅니다. 평생 빗을 만들면서 저런 쥐꼬리가 3개나오면 나이가 너무 들어서 곧 장인으로서의 수명이 다 해간다는 것을 표현해준다고 합니다. 옛날엔 선비들이 글을 쓰면서 벼루 3개의 바닥이 뚫어지면 당대의 유명한 문필가가 되었다고 하지만 기술을 사용하는 장인은 쥐꼬리 3개가 되면 장인으로서의 수명이 다했다(그만큼 나이가 들어서 더 이상 일을 못함)고 봤으니 같은 3개라도 그 의미는 큰 차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 더 이상 기술을 보여줄수는 없지만 후대에 전수해줄 수 있는 진정한 고수가 되었을 것이며 이상근 장인은 그 점을 오히려 감추는 겸손을 보이셨습니다. 당신도 이제야 쥐꼬리 1개를 만들었고 지금 2번째 끌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수 없겠습니다


  빗을 만드는 나무는 대부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열리는 나무 아니면 가시가 있는 나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는 둘다 나무에 전혀 독성이 없어서 그랬다고 합니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있는 나무 중에서도 복숭아 나무나 대추나무를 많이 사용했다고 하며, 특이하게도 절구나 다듬이 방망이도 빗을 만드는 재료로 썼다고 합니다. 수없이 내리치면서 조직이 치밀해져서 빗으로 만들면 평생을 써도 전혀 손상이 없었다고 하네요. 복숭아 나무는 귀신을 쫓는 의미에서 사용했다고 하며 대추는 옛날에 열매 중에서도 최고의 열매로 봤기에 제사상에도 올리기도 하고 빗으로도 사용했던거라고 합니다. 여담으로 옛날엔 집을 지으면 꼭 대추나무를 심었는데, 이는 대추나무가 다른 나무에 비해서 자성을 띠는 성질이 있어서 하늘의 벌(벼락)을 집 대신해서 맞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대추나무를 좋아했던 것이라고 하네요. 우리가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도장을 최고의 도장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럴 때마다 “벼락맞은 대추나무가 얼마나 된다고..”했지만 의외로 대추나무는 벼락을 잘 맞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모발에 담긴 마음과 정신, 얼레빗으로 가다듬어


아녀자들에게 빗은 평생을 소장하는 물건으로, 죽어서는 시신과 함께 묻어주었다고 합니다. 결혼 전에 남자 쪽에서 여자의 집으로 사주와 함께 빗과 거울을 보내는데 그 결혼을 승낙하면 여자는 그 빗과 거울을 평생 썼다고 하며, 결혼을 승낙하지 않을 경우 빗과 거울을 돌려보냈다고 합니다. 남자가 장가를 들어 상투를 트는 것이나, 여성이 혼인 후에 가운데로 가르마를 타고 쪽머리를 얹은 것 등을 보면 남녀의 중요한 순간에 머리모양에 깊은 의미를 담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정갈하게 빗어올린 머리는 여성이 여성으로서의 삶을 어느 정도는 잘 살았음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간혹 귀신영화에서 머리를 풀어헤친 여성이 나오는건 삶에 기구한 일이 있어서 빗질도 못하고 구천에서 떠돌았기 때문에 그러는거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구천에서 헤메지 말고 정갈하고 잘 단장해서 좋은 곳으로 가라고 죽어서도 꼭 빗을 함께 넣어줬었다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머리카락을 제 6의 인식통로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맛보고, 피부로 느끼는 감각이 사람의 5감이라고 하면 제 6의 인식통로인 머리카락은 그보다 고차원적인 인식의 통로였다고 합니다. 모발을 통해 습도와 온도를 느끼고 세상의 다양한 기운을 느꼈기 때문에 도인들이 머리를 기른 것이며, 속세와 단절하고 지나친 감각의 인식을 없애서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기 위해 스님들이 머리를 깍았던 것이라고 합니다. 삼손이 머리카락을 잘리고 나서 기운을 잃은것도, 몽고족이 한족의 머리를 자르게 한것도 고차원적인 인식의 통로를 제거하므로서 사람을 평범하고 비참하게 만들었던 것이라고 하네요.

  그만큼 머리카락에는 한 사람의 생각과 말, 정신이 담겨있다고 믿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머리카락을 빗어내리고 정리하는 과정은 단순한 치장의 일상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가다듬는 소중한 문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여담이지만, 이러한 연유로 한국 여성들이 실연을 당하면 머리카락을 자르면서 연인과의 추억들을 잘라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전문화된 모발 전통 - 빗의 종류도 열 가지


  우리나라는 모발에 대한 애정이 특이나 강하고 머리손질을 정말 중요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빗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기 어려우나 머리카락이 눈을 가리는걸 막으려고 뭔가 머리손질을 했을 때부터 빗은 사용되었을거라고 추정됩니다. 삼국시대에서는 수모라는 직업이 있었는데 지금이 헤어디자이너라고 합니다 머리를 손질해주는 사람들이었는데 그때도 전문 모발관리사가 있었던 것이죠. 이들은 시종을 1-2명 이상 데리고 다닐 정도로 전문적인 직업으로 인정을 받았다. 보통 사대부가 마님이나 기생들이 수모를 불러서 머리손질을 했는데 한번 손질하는데 몇 시간씩 걸렸다고 하며 그 정도로 머리치장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합니다. 그러한 치장이 가장 발전한 때는 바로 조선시대로서 기존의 머리카락에 가채라는 가발을 얹어서라도 멋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가채(가발)은 좋은건 기와집 한 채 값과 맞먹었다고 하며, 그래서 가난한 선비의 아내들이 견디다 못해 나중에 머리카락을 팔면 한동안은 끼니를 해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시집간 딸이 친정에 방문할 때는 값비싼 가채를 얹고 가는 것을 미덕으로 여겨서, 경국대전의 기록에 보면 가채를 살 돈이 없어 시집을 간 후로 친정부모님을 한 번도 뵙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게 되는 안타까운 사연들도 언급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유난히 빗이 많아서 그 종류가 10가지나 되었다고 합니다 보통 외국같은 경우에는 많아야 5종류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보다 다양한 빗을 사용했을 정도로 유난히 모발정리에 신경을 썼다고 합니다. 6종류의 얼레빗(반달빗, 상투빗, 가르마빗, 면빗, 음양소, 살적밀이) 과 4종류의 참빗이 있었습니다. 음식문화로 유명한 프랑스에서 여러 종류의 나이프와 포크를 사용하듯이, 다양한 기능을 가진 빗을 사용하는 우리나라의 다채로운 모발문화도 다시 한 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빗의 모양도 다양한데, 가장 화려한 빗은 왕실과 기방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왕실에 들어가는 빗은 금은으로 장식하고 옥이나 나전칠기로 제작하기도 하여 값비싸게 만들었고, 기방에서 사용하는 빗 또한 이에 뒤지지 않았으나 왕실의 것보다는 일부러 못하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왕실의 권위를 넘을 정도로 화려한 빗을 사용하는건 곧 임금과 왕실에 대한 모독이라고 봤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특이한 점은 기생들이 사용하는 빗이나 비녀는 그 끝이 예리해서 위급할대는 자신을 보호하는 호신도구로 사용되기도 했고 갑자기 체하거나 그럴때는 바로 침자리를 찌르는 의료용도구로 사용했었다고 합니다. 돈 많은 양반집 아녀자들은 의사를 부를수 있었지만 기생들은 바로바로 자신을 치료하고 또 접대를 해야했기에 일부러 이렇게 만들어줬다고 합니다


모발을 건강하게 만드는 빗


  모발을 소중히 여긴만큼 아름답고 많은 머리카락을 오랫동안 유지하기위해서 옛 어른들은 매일 150~200번씩 빗질을 했다고 합니다. 빗질을 골고루 잘해주는 것만으로도 혈액순환을 돕고 모발의 큐티클층을 가지런히 해서 모발이 항상 윤기있게 했던 것이죠.

 

  이상근 장인의 아내분도 결혼당시에 이상근 장인이 머리핀을 만들어줬었는데 30년이 지난 지금은 오히려 머리숱이 늘어서 이젠 그 핀이 작아서 사용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아내분이 특별히 한거라곤 빗으로 항상 머리손질을 한게 다였다고 하네요.  특히 장인의 경우, 빗을 만들면서 자신의 머리에 빗질을 해보면서 완성도를 확인하게 되는데, 감각이 예민해진 두면부의 왼쪽 면을 늘 빗질하다보니 왼쪽이 오른쪽보다 머리숯이 늘어났다는 후문입니다.


이상근 장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장인은 어떤 사람일까...하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한 가지 일만 아는 외골수, 내지는 작업실에 틀어박힌 괴팍한 노인 이런 선입견들 말입니다. 하지만 이상근 장인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의 작품 그리고 작품에 서린 땀과 열정에 대한 애정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감동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빗을 만드는 기능인이 아니라 빗에 대한 애정, 빗을 쓰는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빗에 담긴 역사와 교감하는 구도자라고 할까요...


이상근 장인과의 소중한 몇시간을 보내고서 이제는 전남에 계시는 고행주 참빗장인을 만나뵈러 떠났습니다. 고행주 참빗장인과의 만남은 다음에 다시 쓰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아래의 사진은 제가 이상근장인에게서 선물받은 빗과 제가 제작 외뢰한 얼레빗입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빗이죠. 저희 한의원을 위해 특별히 LMW 마크까지 새겨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빗을 알리기 위해 한의원에 잘 전시해두고 있죠. 빗에 대한 설명은 아래에서 하겠습니다.

 

 

 

 
 


  오른쪽 하단(제 글 바로 윗사진)의 빗은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빗중 가장 오래된 빗의 모양을 복원한 빗입니다. 부여시대로 추정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환자분들이 빗어보더니 제일 사용이 편하다고 하십니다. 오른쪽 상단의 빗은 반월소라고 해서 가장 대표적인 얼레빗으로 반달모양을띠며 여성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빗이라고 합니다. 왼쪽 중간의 빗(2번째)은 남성용으로 상투를 틀 다음 상투부위에 고정시키는 빗으로 크기는 좀 작은 편에 속합니다. 마지막으로 왼쪽 맨 아래의 그림은 이상근 장인이 일일이 손으로 다 파내어 용을 표현한 빗으로 가르마를 좌우로 갈라서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빗인데 가장 화려하면서도 손이 제일 많이 가는 빗이라고 합니다. 입에서 LMW 마크가 나오는데 볼수록 저는 기분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