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기행 5탄.
“내 목을 자를지언정 내 머리는 자를 수 없다”
: 변발과 단발령
역사를 들여다보면 때로 자신들이 원하지 않는 헤어스타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때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주로 얹은머리나 쪽머리 댕기머리를, 남성들은 상투머리를 했었는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말기에는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머리를 잘라야만 했습니다. 머리카락의 변화가 때로 생목숨을 잃게 하기도 하고 헤어스타일 때문에 나라에 정변까지 일어나기도 했으니 실로 작은 변화라고 할 수는 없겠죠..
중국에는 변발이라는 풍속이 있었는데, 변발이란 앞머리는 밀어서 대머리를 만들고 뒷머리는 길러서 땋아 내리는 헤어스타일로 영화 <황비홍>에서 황비홍의 헤어스타일을 떠올리시면 어떤 머리인지 이해가 되실 겁니다. 이러한 변발은 중국과 우리나 역사상에서 두 번 나타나는데 그때 바로 원나라(몽골족)와 청나라(만주족) 시대입니다.
징기스칸하면 떠오르는 민족이 바로 몽골족인데 예로부터 변발을 했었고, 그들이 세운 원나라가 점차 강대해지자 그들의 지배하에 있던 중국, 페르시아 고려에까지 변발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원나라에 인질로 가있던 충렬왕이 변발에 호복차림으로 돌아오면서(1272년) 궁중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후 원나라의 내정간섭이 심해지면서 크게 확산되었습니다. 하지만 원나라 배척운동을 펼치던 공민왕이 원나라의 국력이 쇠약해지는 틈을 이용해서 1374년에 변발을 비롯한 몽골식 풍습을 금지시키면서 없어졌습니다.
참고로 공민왕은 고려 역사에서 개혁정치로 수많은 업적을 남긴 왕이면서 원나라 노국공주와의 뜨거운 사랑으로 유명한 왕이며, 영화 <쌍화점>에서 주진모가 열연하기도 했고 드라마 <신돈>에서 정보석이 맡았던 역할이 바로 공민왕입니다.
원나라 이후 명나라 때에는 변발이 없었고, 이후 만주족이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청나라를 세우면서 다시 피바람을 일으키며 변발이 중국역사에 다시 나타납니다. 만주족은 한족(중국 민족)의 민족적인 기를 꺽기 위해서 “머리카락을 기르면 목을 자른다(留髮不留頭)” 는 천명(天命) 아래 변발을 강요했습니다. 변발을 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목이 잘렸으니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라도 변발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변발은 1911년 청나라가 멸망하면서 없어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895년에 고종이 상투를 자르게 하는 단발령을 내리게 합니다.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 이후 단행된 단발령은 반일감정을 더욱 자극했고 양반들과 백성들은 극렬히 반대해서 을미의병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 때 나오는 유명한 말이 있죠. “내 목을 자를지언정 내 머리는 자를 수 없다”. 그만큼 단발령은 단순히 머리카락의 문제가 아니라 민족적인 정서와 유교적 가르침 아래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재밌는 일화가 있으니 단발령으로 인해서 사진관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도 합니다. 머리를 자르기 전에 상투를 튼 모습을 남겨두고 싶었던 사람들이 사진관으로 몰렸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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