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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S 교통방송 한방백과

8/6 TBS 교통방송 한방백과 - 조선시대 여성의 진료방식과 의녀 -

 

 

 

며칠 친구랑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친구가 궁금한 게 있다며 질문을 햇는데요, 사극을 보면 왕비를 진찰 할 때 어의가 직접 손을 대지 못하고 실로 묶어서 맥을 잡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게 실을 통해서도 진맥이 가능하냐는 거였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TV에서 그러한 장면을 보면서 궁금할 법 했을텐데요  오늘은 옛날에는 여성을 어떻게 진료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원래 한의학에서 진료는 크게 망문문절이라는 네 분야로 나누는데요 망, 즉 눈으로 보고, , 환자에게 묻고, , 환자로부터 듣고, , 직접 맥을 잡거나 복진 등 환자를 직접 만지는 4가지 방법을 말합니다. 이렇게 얻은 정보를 종합하여 진단을 내리게 되며 이 4가지 큰 틀은 지금까지도 한의학의 진단 방법의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는 남녀의 구별이 엄격해 양반 부녀자들이 남자 의원에게 진찰 받기를 꺼려 치료도 받아보지 못하고 죽는 경우가 비일비재 했다고 합니다. 다행이 진맥을 허락하더라도 부녀자의 손목 위에 명주천을 덮어서 남녀간에 피부가 직접적으로 닿는 걸 막았는데요, 맥이라는게 원래 피부의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어야 하는데 명주천으로 덮어두니 아무래도 진료의 정확도가 떨어졌겠죠. 그런데 TV에선 이를 명주실을 환자의 손목에 묶은 걸로 좀더 과장되게 표현한 것 같은데요 이렇게 해서는 진맥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부녀자들이 진료를 제대로 받을 수 없는게 안타까워서 태종 6년에 의녀라는 제도가 생겼는데요 처음에 생겼을 당시에 의녀는 의사의 보조역할로 관비 중에서 선발을 하여 침 놓는 법과 뜸을 뜨는 방법을 가르쳐 여성 진료에 활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산군 시대 이후 의녀가 연회에 참가하게 되고 남성과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풍기가 흐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중종시대에는 의녀들과의 향음을 금지하고 본업에 충실하도록 단속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 후기에는 약방 기생이라는 이름으로 의료와 함께 가무도 병행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대장금은 언제 활약했던 인물일까요?

대장금 조선시대 중종 때 활약했던 실존인물로서, 수많은 남성 어의들을 제치고 임금의 주치의가 되었던 유일한 의녀였고, 중종이 마지막까지 자신의 몸을 맡길 정도로 신뢰 받았던 의원이었습니다.

오늘은 조선시대 여성의 진료방식과 의녀의 발생 배경에 대해 말씀 드렸습니다.